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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동심을 가지고 계시나요

입력 : 
2024-03-15 17:31:06
수정 : 
2024-03-15 19: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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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무서워하는 아이들
억지로 치료하는 대신에
장난치고 놀다 가도록 해
훌쩍 커 성인환자로 오면
어렸을때 기억 새록새록
사진설명
최근 한 정치인이 평소 과묵하고 지적인 안경을 쓴 이미지와는 다르게 아이를 안고 있다가 아이가 안경을 벗겨서 맨얼굴이 드러난 적이 있다. 언론은 그 정치인의 얼굴에 대한 기사들을 썼지만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저 아이는 얼마나 저 안경을 만지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진료실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아이들의 모습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진료실에 들어올 때부터 코를 잡고 들어오는 아이들은 이전에 콧물을 빼준 적이 있는데 그걸 아주 싫어하는 아이들이고, 진료 보는 의자에 앉은 뒤에도 어떻게든 엄마 무릎에 앉아서 진료를 보겠다고 떼쓰는 아이들은 보통 소아과 의사가 무언가 하지 않을까 겁을 먹는 아이들이다. 이러한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 콧물 빼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오늘은 코 안 할게. 선생님은 코 할 줄 모르는 선생님이야"라고 해주면 슬쩍 눈치를 보다가 빤히 쳐다본다. "입에 설압자를 깊이 넣지 마세요"라고 미리 부탁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크게 하마 입을 해볼까?"라고 하고 깊이 넣지 않고 2~3번 시도해서 목을 자세히 잘 봐야 한다.

아이들이 소아과 진료실에서 잘 우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소아과 의사인 내가 자기가 싫어하는 무언가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가끔은 진료 보러 와서 1층에서부터 병원이 무서워서 우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은 그냥 아프지 않을 때 병원에 한번씩 들러서 놀다 가라고 하곤 했다. 그러면 소아과 의사인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뭘 해주면 될까? 막연히 무서운 무언가를 안 할 거라는 믿음을 주면 된다. 그래서 진료를 무서워하는 아이를 억지로 붙잡고 귀지를 뺀다거나 하는 경우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진찰하면 생각보다 어린아이들인데도 말을 알아듣고 따라오는 아이들이 많다.

내가 막 소아과 의사가 된 지 얼마 안됐던 시절 존경하던 소아과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은 아이들이 병원에 진료 보러 와서 여기저기 만져대고 장난을 치곤 해도 그냥 흐뭇하게 보고 웃으셨다. 그러면서 아이의 보호자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그 선생님은 하시는 말씀이 "요즘같이 밖에 나가면 아이들보고 '뭐 하라'보다는 '하지 마라'라고 얘기하기 바쁜 세상인데 적어도 여기 소아과에서라도 해보고 싶은 거 다해봐야죠"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면서도 재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도 그때 이후로 아이들이 진료실에서 괜스레 청진기 한번 만져보고, 진료실 컴퓨터 모니터를 옆에 와서 빤히 같이 쳐다보고 있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보고 웃어준다.

이랬던 아이들이 금방 훌쩍 커서 나보다 키도 더 커진 채로 오면 어떨 때는 못 알아볼 때도 있고 굵은 목소리로 애들처럼 웃을 때는 참 세월이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반말로 부르던 이름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야"라고 부르기는 뭣하고 "○○ 환자분"이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냥 예전의 친숙함을 담아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쑥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기운이 좋아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소아과에서 진료 보면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가끔 보호자들이 아이들의 약이 아니라 본인의 진료를 보고 약을 받기 위해 나한테 와서 "선생님 약이 잘 들어서 왔어요"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런 분들께 말씀을 드린다.

"아직 동심(童心)을 가지고 계셔서 소아과 약이 잘 듣나 봐요"라고.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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